
임신은 기쁘고 위대한 일이지만 10~20% 정도의 임산부들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고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몸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임신으로 인한 행동 제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 임산부의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임신 중 우울증에 대한 원인과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임신 중 우울증의 원인과 진단, 치료와 관리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임신 중 우울증의 발병 위험 통계와 원인
일반적으로 임산부들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출산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산후 우울증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임신 초기 우울증의 발병 위험이 더 크고 증상이 힘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연구에서는 임산부 3800여 명의 정신 건강을 분석한 결과 우울증의 발병 위험성이 높은 고위험군은 임신 초기 임산부로 19.3%에 해당했다. 임신 중기는 13.8%, 임신 후기는 14% 정도였으며 출산 후 한 달 시점에서는 16.8%로 다시 상승했다. 임신 초기와 출산 후에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으며 출산 후보다 임신 초기에 우울증의 위험성이 좀 더 높은 것이다.
임신 중 우울증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다. 먼저 심리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와 더불어 임신과 출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출산 과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양육으로 인한 가계 소득의 변화, 경력 단절과 직장으로의 복귀 문제 등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배우자나 가족의 지지가 부족할 경우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기 쉽다. 법적인 부부가 아닌 사실혼 관계이거나 미혼, 별거, 이혼, 사별 상태인 경우에는 우울증의 발병 위험이 더욱 커진다. 배우자와의 불화가 있는 경우에도 큰 우울증의 요인이 된다.
임신 초기의 심한 입덧이나 어지러움이 동반되면 신체적인 피로감이 정신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우울감이 심화되기 쉽다.
임신 중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도 임신 중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다. 임신 중에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감정을 조절하는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의 균형에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호르몬 변동의 폭이 큰 임신 초기와 말기에 우울감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임신 중 우울증의 진단 방법
단순히 평소보다 예민하거나 우울감을 자주 느끼는 것을 넘어서 2주 이상 지속되는 무기력감, 수면장애, 심한 불안감, 좌절감 등이 동반되면 임신 중 우울증을 의심하고 전문 기관에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현재 산부인과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한국판 에든버러 산후 우울척도(K-EPDS), Beck Depression Inventory(BDI), CES-D 등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판 에든버러 산후 우울척도는 임신 중 및 산후 우울증을 선별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로 10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항마다 0점에서 3점까지 점수가 주어지며 점수의 합이 13점 이상인 경우 치료가 필요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BDI는 일반적인 우울증을 측정하는 도구로 21개의 객관식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임산부의 우울증을 수치화하는 데 활용된다.
CES-D 척도는 우울의 정도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선별검사로 총점 16점 이상이면 경증, 21점 이상이면 중등도, 25점 이상이면 중증의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진단 과정에서는 단순히 평가 척도의 수치만을 가지고 평가하기보다는 증상이 시작된 원인, 과거력, 가족력, 최근의 스트레스 사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임신과 관련하여 우울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의 지속이 2주 이상, 거의 매일 가정이나 직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임신 중 우울증의 치료와 생활 관리
임신 중 우울증은 태아의 성장과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발육이 지연되거나 두뇌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조산의 위험성까지 있다. 그러므로 임산부와 태아의 안전을 고려한 다각적인 치료가 진행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권장되는 것은 전문적인 기관에서의 심리 상담과 인지 행동 치료이다. 임산부가 스스로 비관적인 생각을 깨고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본인의 감정을 공유하고 정서적인 지지를 받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지행동치료는 본인의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수정하여 우울한 감정을 개선하는 정신 치료법이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본인이 스스로 왜곡된 인지를 파악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증상이 심할 경우 전문의와 상담하여 약물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일부의 항우울제는 임신 중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반드시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
배우자는 임산부와 충분한 대화와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충분히 감정을 이해하고 있음을 인지시키는 것이 좋다. 친구와 친정 식구들과의 활발한 교류 역시 임산부의 기분을 밝게 만들 수 있다. 편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조언을 받는 것은 스트레스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임신 중 우울증은 의지가 약해서 혹은 성격이 예민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감정 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배우자, 가족들과의 정서적 지지와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본인의 감정 변화는 표현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꾸준하게 관리하여 건강한 임신 기간을 가지는 것이 태아와 산모 모두를 위한 길이다.